※ 출처 : 당당뉴스 ※

▲ 아펜젤러 순직 기념비에 헌화하고 기도하는 권덕이 감독 일행.
미주자치연회 권덕이 감독이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지난 20일(미동부시각) 오후 1시경 볼티모어로부터 140마일 떨어진 펜실베니아주 벅스카운티에 위치한 아펜젤러의 고향 수더튼(Souderton)을 찾아 한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아펜젤러 선교사의 선교열정을 되새겼다. 권덕이 감독의 아펜젤러 고향 방문에 미주자치연회 이경환 총무와 미서남부지방 남강식 감리사가 동행했다.
권덕이 감독은 먼저 아펜젤러가 다녔던 Immanuel Leidy's Church에 인접한 묘역에 있는 아펜젤러 순직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이곳에는 아펜젤러의 부모와 형, 동생이 묻혀 있다. 아펜젤러(1858-1902)는 1902년 한국어 성경번역을 위해 배를 타고 가다 어청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충돌사고로 순직했다. 시신을 찾지 못해 그의 무덤은 없다. 순직기념비는 지난 2021년 박대성 목사(베다니 한인연합감리교회)와 충청연회(유명권 감독) 주관으로 이철 감독회장의 참여 속에 가족 곁에 세워졌다.
이곳에서 권덕이 감독은 “어두웠던 조선에 한 줄기의 빛처럼 복음을 전해준 아펜젤러 목사님을 기르고 낳아준 이곳에 복음에 빚진 자로 서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도 아펜젤러 목사님의 위대하고 희생적인 삶을 본받아 이민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도록 성령께서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 아펜젤러 순직기념비에 헌화하기 위해 묘역을 찾은 권덕이 감독 일행. 뒷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아펜젤러가 다니던 Immanuel Leidy's Church 이다. 지금은 사진의 오른쪽 300미터 지점으로 건축이전해 있다. 아펜젤러 기념비 옆에 하얀 비석 두개가 아펜젤러의 부모의 묘비이다

▲ 헌화하는 권덕이 감독

▲ 순직기념비의 뒷면에 서문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 서문)
“1858년 이곳 사우더튼에서 태어난 아펜젤러 목사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라이디스 교회에서 신앙을 키웠다. 1885년 뉴저지주 드류신학교를 졸업한 후 복음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로 입국했다. 그 후 전도자,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품을 가진 교육자, 편집자, 번역자로 한국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1902년 한국어 성경번역을 위해 배를 타고 가다 발생한 선박 충돌사고로 안타깝게 순직했다. 그의 삶과 가르침은 한국 교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여전히 한국 감리교 신앙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아펜젤러 목사의 위대하고 희생적이었던 삶을 기리고자 한국의 감리교인들이 이곳 가족 묘지에 정성과 뜻을 모아 기념비를 세운다. 2021년 11월”

▲ 아펜젤러가 다니던 Immanuel Leidy's Church. 지금은 임대되었고 교회는 300미터 거리로 이전했다.

▲ 이전한 교회전경
헌화를 마친 권 감독 일행은 원래의 위치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신축한 임마누엘 라이디스 교회(273 West Cherry Ln, Souderton, PA 18964)를 찾아 존 니더하우스 목사를 만나 환담을 나눴다. 이 교회에서 35년을 목회하고 은퇴한 니더하우스 목사는 한국에서 감리교회가 부흥한 것은 알지만 20년을 목회하기까지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아펜젤러의 존재를 몰랐었다고 했다. 한국 목회자의 방문으로 아펜젤러의 일대기를 듣고는 매우 놀랐으며 자신도 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계 28개국에 선교사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니더하우스 목사는 아펜젤러가 다니던 당시의 교회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펜젤러가 태어난 1858년에 세워진 당시 교회는 예배당 한 칸만 서 있었다. 이 교회에서 아펜젤러는 선교사의 꿈을 키웠다.

▲ 니더하우스 목사와 환담을 나누는 권덕이 감독 일행

▲ 아펜젤러가 태어난 1858년에 세워진 당시 교회의 사진.
권덕이 감독 일행은 교회로부터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펜젤러의 생가를 찾았다. 이 생가는 2015년에 박대성 목사가 찾아내어 한국에도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다. 권 감독 일행은 생가를 둘러보며 여기서부터 교회를 오가던 아펜젤러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권 감독은 이 생가를 감리회가 구입해 박물관이나 연수원으로 활용하여 보전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미부동산 정보사이트에 의하면 이 생가는 2.6 에이커에 달하는 큰 농지를 포함해 약 70~80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 아펜젤러 생가 앞에서
당당뉴스는 권덕이 감독의 아펜젤러 고향 방문길에 동행하여 권덕이 감독을 인터뷰했다. 권덕이 감독은 서울남연회로 편입해 간 미주연회의 60여개 교회가 돌아와 하나 된 동력으로 미주선교에 힘쓰는 모습의 미주연회 정상화에 큰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권덕이 감독 인터뷰
일시 : 2024. 11. 20.
장소 : 아펜젤러 생가 일대와 승용차 안.
기자
취임식 후 첫 일정으로 아펜젤러 고향을 방문한 이유와 여기서 품게 된 각오나 감동이 있으셨나요?
권덕이 감독
조선 땅에 복음을 처음으로 전해준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고향에 오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아펜젤러를 복음으로 길러 준 고향교회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를 방문하면서 한국교회가 그에게 진 복음의 빚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려고 이렇게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아펜젤러에게 발아된 복음의 씨앗이 조선 땅에 뿌려져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 성장했을 뿐 아니라 나라를 변화시켜 세계에 빛나는 오늘의 한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미주연회에 있는 우리들 역시 복음에 빚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선교적 열매인 우리들은 이곳에서 그에게 진 복음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선교적 사명을 재확인하고 미주 안에서 사역의 역량을 발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잡아 봅니다.
기자
2년의 임기를 시작하셨는데 임기 동안에 구상하고 있는 정책이나 선교 비전이 있으신가요?
권덕이 감독
2년 동안 제가 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이 있는데, 첫 번째는 서울남연회 강남지방에 속해 있는 우리 미주연회원들이 편한 마음으로, 또 기쁜 마음으로 돌아와서 함께 연회를 건강하게 구성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석 감독회장님이 취임하시면서, 또 미주연회 감독 이·취임식에 보내주신 축하 영상에서도 서울남연회로 이명해 간 60여개 교회가 미주연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해 주셨습니다. 감독회장님과 서울남연회 감독님, 그리고 강남지방 감리사님이 60여개 교회가 미주연회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행정이나 정서적으로 여러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면 미주자치연회 모든 연회원들은 열려있는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한국의 연회와 미주자치연회 사이에 상당한 갈등국면을 초래했고 또 같은 미주자치연회 내에서도 분열의 단초가 되었던 미주자치법을 폐기하기로 결의(2024년 5월 연회)한데 따른 후속조치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감리교회와 미주연회는 하나의 조직체인데 자치법이 계속해서 다툼의 요인이 되고 불편함과 여러 오해를 일으키기만 한다면 폐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마침 올 해 입법의회가 예정되어 있으니 다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어 미주에서 꼭 필요한 입법사항을 장정에 넣어 더 발전하고 성숙한 연회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입법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기자
그러면 서울남연회로 간 60여개 교회가 어느 시점에 돌아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세요. 연회 전일까요? 아니면 귀환을 위한 입법이 필요할까요?
권덕이 감독
60여개 교회가 돌아오는 데에 입법이 따로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60여개 교회가 서울남연회로 편입할 수 있었던 법적 근거가 된 조항(【1733】 제11조 미주자치연회 경계 미주자치연회 경계는 미주자치연회의 자치법에 준한다. 다만, 미주자치법이 「교리와 장정」과 상충하여 감리회 「교리와 장정」에 속하기를 원하는 교회는 감독회의의 협의를 거쳐 국내 각 연회 및 지방회에 편입할 수 있다.)은 자치법이 폐기된 만큼, 내년 입법의회에 가서야 폐기되겠지만 그 법은 편입해 갈 때만 유효한 법입니다. 따로 입법이 없어도 의지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지방회와 연회에서 행정처리만 해주면 됩니다. 제 생각에 내년 2월을 전후로 강남지방회에서 미주로의 복귀를 결의해주고 5월 첫째 주에 개최될 미주연회 때 참석해 연회를 같이 하는 로드맵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내년 미주연회에 감독회장님이 오신다고 하니 그 전에 마무리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때 오셔서 하나 된 미주연회를 보시고 격려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기자
지난 연회에서 자치법 폐기를 결의했습니다. 그러면 교리와장정대로 미주행정이 이루어질 텐데 연회에 평신도들의 출석이 극히 저조한 미주만의 특수한 사정이나 개체교회의 유지재단편입, 총회 각 위원회 참여, 은급적용, 국적문제, 캐나다의 경우 부담금 송금문제, 5월 연회에서의 감독선거 등등 장정을 문자대로 적용하기 곤란한 미주의 현실이 있지 않나요?
권덕이 감독
선거 문제와 각 의회 개최를 위한 개회성원의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미주연회는 한국 연회와 다르게 감독선거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만 잘 정리가 된다면 교리와장정과 미주연회 현실이 상충되는 부분은 별로 없는 것 같구요.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내년도 입법의회가 있으니까 다툼의 요인이 없도록 미주특성에 꼭 필요한 사항의 법을 장정에 입법할 수 있도록 특별 위원회를 두어 철저하게 준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돌이켜보면 자치법을 어쨌든 미주가 원해서 만들었고 시행도 해 왔는데 폐지한 입장에서 그 자치법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어요?
권덕이 감독
자치법이 우리에게 주었던 유익한 부분도 참 많았습니다. 연회에서의 감독선거나 선거권자 제비뽑기 제도 도입, 재판간소화, … 등등 그 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국이 하지 못하는 여러 시험을 선구적으로 해 보았다는 것은 큰 자산으로 남을 거고요, 한국의 감리교회가 국외로 선교의 지평이 넓어졌을 때 현지 사정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 지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치법을 통해서 연회가 더 성숙하고 성장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실적으로 과유불급이랄까요? 전체 연회원들과의 충분한 소통과 입법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연회원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의 요인이 발생한 것이므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미주연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연회원들의 결단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럼 미주연회가 다른 차원에서 자치를 위한 법안을 계획하는 것인가요?
권덕이 감독
자치는 아니고 앞서 살폈듯이 북미, 중미, 남미를 아우르는 각 나라의 특성과 형편이 고려될 필요는 있습니다. 장정의 정신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지 사정을 수용하고 선교의지를 꺾지 않는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가령 영어권과 스페인어권 목회자가 우리에겐 절실한데 이들에게 한국의 수련목회자 시험에 응하라 하면 선교하지 말자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진급과정에서 편법과 불법을 경계하되 현지에 대한 배려 또한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기자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에서는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데 미주연회는 한국처럼 교세가 줄어들고 있어요. 임기동안 미주연회 부흥 발전을 위해서 계획하고 계신 어떤 정책이나 운동이 혹시 있으세요?
권덕이 감독
예, 저는 이제 미주자치연회 표어를 ‘하나로’ ‘상생으로’ ‘도약하는’ 연회로 정했습니다. 한국도 연회마다 위기라고 하는데 우리 이민교회 역시 이민자들이 적어지면서 젊은이들을 교회에서 키우지 못하면 이제 존폐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상당히 크고 또 그러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선교적 마인드를 재정립하여 사명을 감당하리라는 어떤 동기부여를 연회원들에게 제공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저는 목회자 세미나를 좀 활발하게 열고 싶고요, 그에 준해서 사모 힐링 세미나와 미자립교회 대책을 정책적으로 만들어 시행하고 싶습니다. 미주자치연회 경계가 한국에 비해서 약 250배 넓은 지역인데 그 지역들을 다 커버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지방 내 이웃 교회에 가려고 해도 3, 4시간, 어느 교회는 10시간 운전해서 만나야 해서 연회 내 교회라고는 하지만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줌(Zoom)을 활용하여 지방 네트워크를 활발히 하고 재교육도 실시하려 합니다. 여러 가지로 저희들에게 도전이 될 수 있는 국내외의 강사들을 초청해 1년에 3번 정도의 세미나와 헨리 아펜젤러 대학교 교수들과 함께하는 재교육 프로그램, 남미 단기선교 프로그램, 한국 유학생 도우미 등 할 일이 참 많네요.감사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미국계 교회들이 많이 문을 닫고 있는데, 우리 한인교회 목회자들이 그런 교회를 렌트하던가 제공받아서 교회를 열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숫자적 부흥에 연연하지 않고 미국이나 캐나다, 멕시코 어떤 지역에 있든지 내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지고 또 교회가 열려졌기 때문에 복음이 전파된다는 사명감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준비된 후배 목회자들이 많이 와서 우리 연회가 상당히 젊어진 것은 희망적입니다.
기자
UMC가 GMC로 갈라지면서 우리 KMC와 관계설정이라든가 협력구조에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한국에선 GMC와의 아직 공식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감리회 대외협력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이 있을 것 같은데 미국 현지의 감리교회들과의 선교적 협력의 모양새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권덕이 감독
GMC는 지금 막 태동되어 아직 조직화와 정체성 부분에서 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또 대표성이 누가 되든 같은 감리교회로서 큰 틀에서는 어차피 관계성을 열어놓고 협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KMC에서도 GMC로 몇 개 교회가 소통이나 법적인 절차 없이 나갔고 UMC와도 껄끄러운 부분이 있지만, 심지어 한국에서는 동성애 문제로 UMC와 관계를 끊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하나의 이슈가 생겼다고 해서 지금까지 가져왔던 역사의 유구함을 뒤로 하고, 전체적인 관계를 단절하고 끝내는 것은 너무 극단적이고 불합리한 것 같고요, 그리고 복음의 불모지 조선에 복음을 가져다 준 은혜도 있는데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 더 많은 길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서로 이해하고 연대하는 가운데 서로 공존하고 또 공감, 공생하며 성숙하고 성장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제가 미주 현장에 있기 때문에 미국교회에 대한 정보를 다각도로 모아서 감독회의나 입법 시에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하려 합니다.
기자
미주연회 수련목회자 정책이 변경됐는데 그 내용부터 말씀해 주시고 2세 목회자 수급에 대한 어떤 대책이나 구상을 가지고 계신가요?
권덕이 감독
미주자치연회에서 수련목회자 과정을 통해서 진급한 사람들은 한국에 이명해 올 때 한국에서 치르는 수련목 고시를 다시 치러 합격해야 되고 영성훈련과 심층면접을 받도록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미주수련목과정을 거친 이는 미주에서 10년 이상 목회해야만 한국 이명을 조건없이 인정해 주겠다고 합니다. 미주의 지금까지의 자치법에 따른 수련목을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저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다만 2015년까지 거슬러 소급해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 연회가 목회자 진급을 한국과 다르게 쉽고 편하게 시킨 것도 아니고, 수련목 시험과 같은 목사고시를 치르고 모든 과정을 거쳐 진급시켰는데 미주에 대해 차별을 미주연회에서 이미 목사 안수받은 이들에게까지 소급해가며 두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한국에서 왜 그런 정책을 마련했다고 보시나요?
권덕이 감독
그것은 제가 생각할 땐 한국에 수련목 고시에 합격하지 못해 적체된 사람들이 있는 반면 미주자치연회는 더 쉽고 편하게 통과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심지어 한국에 곧바로 돌아온다는 오해 부분도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 수련목 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볼 때 미국의 제도를 이용해 안수를 쉽게 받는다고 보는 거지요. 한국에서 이해가 좀 부족했던 것 같고 이 정책마련 과정에서 심도 있게 논의한 흔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또 우리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한 이의제기를 좀 많이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국과 미주의 상황이 전혀 다른데 한국 사정에 편중된 제도여서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우리 젊은이들이 개척을 열심히 많이 해 가지고 우리 연회가 더 부흥되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을 품어 봅니다.
기자
현재 수련목회자 시험 정책이 이렇게 한국으로 통합되면서 이민 2세 목회자들의 어려움이 커져 보입니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2세 목회자들, 그리고 원어민 목회자들이 한국어로 된 수련목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어쩌면 이들의 KMC 진입을 막아 버린 느낌마저 듭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권덕이 감독
미처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여기서 성장한 젊은이들이 KMC교회 안에 있어요. 미주연회의 미래들이지요. 이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교회를 떠날 텐데 기성 목회자들에겐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같이 자란 2세 목회자들은 다릅니다. 영어도 잘하고 그들의 문화도 이해하지요. 다만 한국어에 익숙지 않아요. KMC 안에 있는 스페니쉬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감리회가 한국어로 수련목 시험을 치르겠다고 하면 그들이 감리회에 있으려 하겠어요? 소통할 수 있는 목회자가 없으면 2세들도 떠날 텐데 이런 교회에 미래가 있겠어요? 솔직히 한국이 미주연회를 문 닫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어권 목사들이 한국의 필요에 의해 한국으로 파송 받아 가기도 하는데 이러면 인재풀도 작아지는 것입니다. 원어민 수련목회자에 대한 배려가 절실해 보입니다. 원어민들에 대한 목사안수는 미주자치연회가 책임감 있게 관리해 나가도록 일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기자
다시 60여개 교회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사실 자치법이라는 큰 담이 허물어졌으므로 미주연회로의 복귀는 쉬워 보이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감정적인 면과 더불어 60여개 교회가 미주에서의 감독제도 폐지를 원하기도 한다는데 화합을 위한 구상은 무엇이며 제도를 바꿀 의향이 있으신지요?
권덕이 감독
미주연회에서는 60여개 교회를 서울남연회로 보낸 적이 없습니다. 즉 그들의 자리는 항상 미주연회에 있습니다. 이곳이 선교지이므로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협력할 뿐입니다. 또한 미주의 모든 연회원들이 60여개 교회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서울남연회와 강남지방회가 빠른 행정처리를 해주기를 바랍니다. 제도요? 조직과 사람을 위해 제도가 있는 것이지 제도를 위해 조직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다만 우리가 KMC의 우산아래 있는 만큼 자치법도 폐지했듯이 장정안에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또 제도는 필요에 따라 변하고 때로는 개혁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기도 하는 것인 만큼 유연하게 대처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열린 마음으로 미주연회의 미래를 함께 의논해 갈 수 있다고 봅니다.